2009년 07월 18일
둥이도 노무현 공부해요

# by | 2009/07/18 18:19 | 오늘 하루는... | 트랙백 | 덧글(0)
잠결에 들리는 빗소리는 무섭기만 하다.
그 덕에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오후 늦게서야 일어났다.
바람불고 비오는 이런 날이면, 밖으로 나가는 건 조금도 하기 싫다.
새벽 늦게까지 인터넷 서점을 뒤져 몇 권을 주문했다.
5시쯤 나의 집으로 택배아저씨는 이 책을 배달해주었다.
12시간도 안되어 책이 배달되다니, 놀라울 뿐이다.
한 동안 책 사는 것을 자제하다, 인터넷 서점에서 준다는 물병에
뭐가 눈이 뒤집혔는지 7만원이나 넘게 책을 샀다. 그래도 받아든
책을 보니 너무나 뿌듯하고, 한 동안은 마음의 양식과 지혜와 지식을
쌓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지지난 한 주는 정말 괴로웠다. 34살. 이 나이에 내가 뭐하고 사는 건지,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하는지 뭐 이런 생각으로 머리가 지끈 거렸고 만사가 다 귀찮았다.
정말 영원히 그럴 것만 같았던 나도 어느 날 하루 잡고 퍼질러 잠을 잔 덕인지,
그 고민이 그냥 사라져버렸다. 정령 그 고민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겠지.
안다. 다만, 그 고민이 별로 유효하지도 효력도 없기 때문에, 아니면,
감정적으로 더 이상 그런 것을 끌어안고 버터낼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아마도 그냥 공중으로 날라간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여간 그런 한 동안의 시간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책을 품에 안고 또 다른 공간으로 나를 이동하는 건 나에게는 너무나
행복한 일일지도 모른다.
한때는 역사관련 책 등 전공에 필요한 책을 자꾸 사들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냥
읽고 싶은 책을 다양하게 눈독을 들이기로 했고, 그래서 내가 클릭한 책은 이런 것들이다.
소설책 <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 여성소설가들이 서울을 소재로 하여 쓴 글이다. 요즘 나는 서울에 사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기에,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이라는 공간에 대하여 다른 여성들은 어찌 해석하는지, 어떻게 재현하는지 궁금하여 이 책을 접어들었다. 이런 비슷한 시리즈의 소설책으로, 이화여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집도 최근에 출판되었다. 제목에 이화가 들어가던데.
법문집 법정의 <일기일회> 일기일회란, 모든 것은 생애 단 한 번뿐인 인연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지난해 가을과 겨울 종교를 오고가며 수행하는 사람들의 책이나 그들의 깨달음이 담긴 책을 읽었다. 그때는 그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내 몸에 더러운 것들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고, 나의 욕심과 번뇌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다시금 그런 의식이 필요한 것 같아 구입했다. 지난 겨울에 나온 에세이집보다는 더 좋은 책일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장보드리야르의 <아프리카> 얼마전 오키나와 학술대회에서 이 책의 번역자인 주은우를 본 적이 있다. 역시 사람을 직접 멀리서나마 보는 것으로도 왠지 그를 많이 알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그날 서울대 사회학과 사람들의 몇몇을 보면서, 남성 학자들의 커뮤니티를 멀리서나마 보면서, 참 공동체는 필요한데, 그것을 어찌 구성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고민이 남는다. 여성의 커뮤니티는 과연 서로를 학자로 인정하고, 서로를 지지하며,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는가? 과연 커뮤니티 안에서 교수와 학생은 서로를 인정하며, 서로의 성장이 가능하도록 격려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여전히 내 뒷통수를 때린다. 과연 나는 어떤 모습을 하는가? 단순한 도피는 아닌가라는 생각도 적지않게 들기도 하지만. 각설. 하여간 예전에 서강대에서 시각관련 수업을 들을 때, 주은우가 쓴 현대성과 시각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번역에 대한 기대를 품고 주문했다.
이 책은 보드리야르가 미국을 여행하면서 쓴 일종의 여행에세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단지 눈에 보이는 어떤 것에 휘둘려, 그 안의 어떤 것을 보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좀 깊이 있고 지적 사유능력을 가진 그의 책을 읽고 싶었다. ㅋㅋ 나도 그런 여행 에세이 한 번 남겨보고 싶지 않겠는가.
오르한 파묵 <이스탄불>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가끔 휴식을 취할 때 학내에 있는 교보문고에 가고는 한다. 거기서 몇 번이나 내 눈에 들어왔던 <이스탄불> 나는 그가 쓴 <내 이름은 빨강>을 읽지는 못했다. 워낙 동양과 서양 문화의 만남을 내용으로 터키를 배경으로 쓰여진 책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두 권이나 되는 소설책을 아직 읽기는 부담스럽다. 오히려 문명과 문화 그리고 작가로서 자신이 살고 있는 이스탄불에 대해서 어떤 시선을 갖는지 궁금하고 또 어떤 정신을 가진 작가일까라는 궁금증에 주문을 했다. 책을 구입한 독자들의 서평이 무지하게 많이 달린 인기 작가이니, 실망시키지 않으리라 믿으면서. 내가 사는 서울, 그가 사는 이스탄불, 그리고 보드리야르가 구경한 아메리카. 그러고 보니 모두 공간에 대한 이야기 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과연 어디로 가기를 희망하며, 어디에서 살고 싶은가? 과연 공간이 나의 삶을 규정하는가? 나의 삶이 공간을 규정하는가? 뭐 이런 생각이 없지 않아 내 머리에 있는 듯 하다.
그리고 마지막 김연수의 <별은 노래한다> 작년 가을에 출간된 소설책인데, 만주를 배경으로 한 젊은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이다. 과연 이 소설을 내가 읽을 수 있을까가 우려되는 책. 고통으로 쓰여진 책같아 정말 두렵다. 그러나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다고 생각해 주문했다. 70년생 김연수와 68년생 김영하. 나는 김영하의 소설은 꽤 읽은 편이고 그의 발랄하고 도발적인 소설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와 달리 김연수는 무겁고 진지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김연수를 좋아하는 문학지망생이 적지 않던데, 궁금하다. 그의 소설은 어떨지.
주문하려다가 그만둔 책은 대부분 사회과학 혹은 여성학 책이다. 일단 다음주 수요일에나 배달된다는 것에 흥미가 떨어졌고, 언제 볼지 몰라 일단 밀어두었다. 이제는 책도 의무감으로 읽지는 않으련다. 인생 즐겁고 재미나게 살자는 짓인데, 하물며 책까지 힘겹게 읽을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 ㅋㅋ
# by | 2009/07/18 18:15 | 오늘 하루는... | 트랙백 | 덧글(0)
지난 주말은 시인 최영미의 시집과 에세이로 시간을 모두 보내버렸다. 평일에 시집을 사고 싶어 예스24를 얼쩡거리다가 그녀의 신간이 나왔다고 하기에 검색을 하고, 사람들이 남긴 평을 읽었다. 읽고 싶었다. 몇년 전 발간된 시집 <돼지들에게>는 시대에 대한 비판적인 사유는 좋았지만, 시적으로는 그렇게 매력적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한 동안 그녀에게 멀리해왔었는데, 좋은 신간이 나왔다고 하기에 시집 <도착하지 않는 삶>을 주문했고, 여기에 더 해 그녀의 <시대의 우울, 유럽여행 일기>도 주문했다. 그녀의 시집은 강한 매력이 있어, 덮어 놓고 조금씩 조금씩 읽고 싶었지만 결국 한 숨에 읽어내렸다. 이 시집에서 그녀는 이미 쉰을 내다보는 중년의 여성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사람과의 관계와 사회와 정치그리고 세상에 대한 시선은 상당히 건조하면서 간결했지만 강한 끌림이 있었다. 그녀의 시집을 읽고 꽤 수많은 시를 벳겨서 여기에도 올려놓았다. (하지만 요즘 읽고 있는 황병승의 또 다른 시집은 100쪽이 넘어가도 내 가슴을 울리는 시는 없다. 그의 <남장여장시코쿠>는 정말 매력 그 자체인데.)
내가 최영미 시인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때이다. 강릉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국어를 가르쳤던 최재락 선생님께서 소개해주었다. 내 기억에는 내 돈으로 사 든 첫번 째 시집이었다. 시집의 맨 앞장에는 94년 5월 11일이라고 써 있고, 그 뒤에는 "인간은 변화라는 이름의 진화로 살아가는 동물이다"라고 적혀있다. 어지간히 어릴 때 부터 나는 변화를 꿈꾸었나보다. 하여간 십대말을 강릉에서 보내면서, 읽었던 최영미의 시는 꽤 인상적이었다. 제목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주는 강한 어떤 느낌. 서른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나는 그 문장, 그 시의 제목에 이끌려 내게 '서른'은 어떤 강력한 의미가 되어왔던 것 같다. 어쨌든 그녀는 내가 시를 읽게하고, 시집을 사보게 만든, 그러니까 나의 시입문은 그녀로 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소설은 아직까지 그녀처럼 나를 입문하게 만든 어떤 결정적인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아마도 내가 양많고 이야기가 풍부한 소설보다는, 간결하고 담백하며 분량도 부담스럽지 않은 시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이런 알게 된 최영미 시인이 그러니까 97년에 발간한 <시대의 우울, 유럽여행 일기>는 상당히 재밌었다. 하얀색 바탕에 파란색 그림이 놓여있고, 속은 약간은 빳빳하고 흰 바탕에 사이사이 들어있는 화가들의 그림과 몇 장의 사진들. 지금까지 보았던 수 많은 여행기에 너저분하게 들어있던 여행집과는 아주 달랐다. 두께도 그리 두껍지도 않고, 뭔가 손에 착착 달라붙는 느낌까지 준다. 쉰이 다 되어 낸 신간 시집을 읽자 마자 보다보니, 자꾸 이 여행기도 쉰에 가까운 나이에 쓴 거라는 착각을 하며 읽는다. 그러나 이 시집은 앞서 적었듯이 97년. 그녀가 1961년생이고, 그녀가 여행을 다녀온 건 95년과 96년이니 나의 대학교, 그것도 한참 허우적 거리던 상반기에 해당하던 그 시기이다. 그러고보면, 재밌는 건, 그녀의 나이가 34살 무렵에 처음으로 그녀는 유럽여행을 다녀왔고, 그에 대한 글을 남긴 것이다. 34살에, 그녀가 유럽을 다니며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이 녹아들어있다. 이 글에서 다뤄지는 화가나 그림은 그녀만의 감각과 취향으로 선별되어 있다. 특히 렘브란트라는 화가에 대한 이야기가 강하게 다뤄지고 뒷부분에는 베이컨에 대한 것도 좀 강도있게 다뤄진 것 같다. 홍대 미술사 대학원을 마친 그녀답게, 또한 시를 쓰는 그녀답게 그림과 이에 대한 설명은 참 잘도 어울린다.
책 뒷표지에는 몇몇 지인들이 추천의 글을 남기었는데, 대부분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고 적고 있다. 그만큼 최영미 시인은 이 유럽여행 시기, 자기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놓고 삶을 살고 있었던 것 같다. 94년 3월 초판을 발행했고, 내가 산 시집은 94년의 4월 판이다. 그녀는 이 여행기에도 남겼는데,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50만부가 팔렸다(ㅋㅋ 팔았다)로 되어 있다. 시집이 베스트셀러 올라가며, 세상의 모든 주목을 받던 그녀는 몇 년도 채 지나지 않아 복잡한 심사로 여행길을 떠났던 것이다. 여기에는 간혼 "서른 잔치가 끝났다"는 표현이 왜곡되어 자신이 받았던 극단적인 괴로움이 조금 담겨있기도 하다.
하여간, 그런 그녀가 여행을 하며 남긴 글들은 뭔가 쫀득쫀득하고 뭔가 맛갈스런 맛이 난다. 누군가 그녀의 표현에 대해 "서정이 너무 무겁지 않고, 건조하며 지적인 문체로 모더니즘이 풍부하다"라고 평가한다. 아마도 나에게 이런 풍이 딱 들어맞는 것 같아. 난 지나치게 감정적이거나 서정적인 시를 좋아하는 편은 아닌 것 같다. 난 가끔 싸이에도 내 속내를 드러내는 글을 썼다가는, 감정적 과잉이라 여겨져 지운 글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감정에 맞게, 글의 수위를 맞춰서 써 내는 것. 참 어렵지만, 쉽지는 않을 일이다. 하여간, 최영미의 <시대의 우울>은 그래서 내게 오늘같이 우울하고 꿀꿀하고 심란하며, 마음이 산란하여 집중도 되지 않는 날에, 도서관에 앉아 독파하기에는 안성맞춤인 책이었다.
여기에 마음에 들었던 글귀들을 모아서 남겨놓는다.
44쪽
"나는 렘브란트의 마지막 자화상을 보았다. 추하고, 부서진 소름 끼치며 절망적인, 그러나 그토록 멋지게 그려진 그림을. 그리고 갑자기 나는 깨달았다. (중략) 거울 속에서 사라지는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 스스로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그릴 수 있다는 것. 인간임을 부정하는 것. 이 얼머나 놀라운 기적인가. 상징인가 - 오스카 코코슈카 -
68쪽
나는 언제 답을 얻을 것인지, 생은 왜 내게 이다지도 낯설까. 이방의 도시를 전전하며 나는 자신과 끝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74쪽
로댕의 <지옥>에서 당신은 괴물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중략) 이 남자들과 여자들을 괴롭히는 사악한 악마는 바로 그들 자신의 열정이며, 그들의 사랑과 증오 그 자체이다. 악마란 바로 그들 자신의 육체이며, 그들 자신의 생각이다.
91쪽
여행을 하면서 나는 점점 내 자신에 근접해갔다. 내가 어떤 인간인지, 내가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게 무엇인지. 얼마짜리 방이면 만족할 수 있는 인생인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110쪽
그 익명의 '쟁이'들이 닦아놓은 길 위에서 거장들은 더 깊이 파고들고 오래 서성였을 따름이다. 끝이 보일때까지, 자신을 부수고 거듭나기까지, 진정한 재생과 부활을 꿈꾸었던 것이다.
121쪽
카스트너, 풀은 역사위에 어떻게 자라는가.
135쪽
나의 신이여, 내가 형편없는 인간이 아니며 내가 경멸하는 자들보다 못하지 않다는 것을 나 자신에게 증명해줄 아름다운 시 몇편을 쓰도록 은총을 내려주소서 -------- 보들레르, <빠리의 우울>
153쪽
시인 잉에보르크 하흐만
누구든 떠날 때는
누구든 떠날 때는
한여름에 모아둔 조개껍질이 가득 담긴 모자를 바다에 던지고
머리카락 날리며 떠나야 한다
사랑을 위하여 차린 식탁을 바다에다 뒤엎고
잔에 남은 포도주를 바닷속에 따르고
빵은 고기떼들에게 주어야 한다
피 한방울 뿌려서 바닷물에 섞고
나이프를 고이 물결에 띄우고
신발을 물속에 가라앉혀야 한다
심장과 달과 십자가와, 그리고
머리카락 날리며 떠나야 한다
그러나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을
언제 오는가?
묻지는 마라.
206쪽 베이컨 왈,
사람들이 내 작품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는 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그들의 문제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그림을 그리
지 않습니다. 나는 자신을 위해서 그립니다.
226쪽
그러나.... 나는 안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내가 앞으로도 떠나고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리라는 것을. 내 속의 우울을 들여다보며 이 시대의 우울을 통과하기 위해서
가끔씩 그렇게 표표히 표류해야 하리라.
# by | 2009/07/06 21:13 | 트랙백 | 덧글(0)
오늘 아침은 낮달이 떴습니다
마치 서산에서 방금 떠오른 것처럼 숨가뿐 모습이었습니다
방금 세수를 마친 소년의 얼굴처럼 동그라미, 환이었습니다
시간이 더 이상 스며들 수 없는 유년시절. 시간이 만들어준 기억이 지만 시간에게 닫혀진 공간 시간의 지평에서 사라져 기억으로만 건너가는 그 마당 소년은 혼자였으며 사월은 화창했습니다 마당에는 흰 빨래들만이 눈부시게 흔들리고 외롭지 않은 새들이 드나들며 노니는 모습을 외롭게 들여다 보고 있었습니다 빨래 위를 넘실거리는 바람의 어깨 위, 높다랗게 낮달이 떠 있었고 소년은 혼자여야하는 이유도 모르며 혼자였습니다 까닭없이 삶은 이렇게 서글픈 것일 거라고 자신을 타일렀습니다 소년이 알고 있던 그 많은 즐거움들도 모두 어디로 숨었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그들만이 가는 나라가 따로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타일렀습니다 막연한 그리움만으로 텅 빈 오후 좋은 볕에 달구어진 마루에 웅크리고 누워 달을 쳐다보았습니다 소리없는 얼굴이 나에게 전하는 말들은 해석할 수 없었습니다 부모 몰래 훔쳐먹고 싶은 즐거움도 싱거웠고 다른 곳으로 나가 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습니다 아직 그날, 자신도 모르게 흐르던 눈물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날을 지켜보았던 낮달이 다시 떠 있었습니다. 다시 눈이 시큰거리고 살갛돋는 외로움이 되살아났습니다
사람들은 왜 나무들처럼 계절마다 크지 않을까요 여전하게 시간들은 다가오는데, 나를 키운 시간들이 이제는 무엇을 할까요
오늘 옆에 앉은 선생님에게 질문한 말입니다. 대답 대신 나를 뜨악한 눈으로 다시 쳐다보았습니다. 나의 몸을 키운 시간이 오늘은 마음을 키우고 있습니다.
사월이 떨어진 교정에는 담록이 싱그럽습니다. 꽃과 잎은 무엇이 다른가요. 잎은 다른 이름의 꽃이 아닌가요. 초록색 꽃잎들이 화사한 하루였습니다. 95.4.20. 여린 꽃잎이 떨어지며 향기로운 재지를 두드려 불러낸 담록의 여린 잎들은 계절의 새로운 감동입니다. 마음이 커가면서 세상은 점점 커보이고, 자신은 더욱 작아집니다. 이렇게 빛 맑은 날에는 복사꽃이 피어있는 촌가가 보고 싶습니다. 마당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처럼 넉넉하게 비어있고, 낮잠에서 일어난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따라오고, 복사꽃이 자라는 울타리 옆으로는 투명한 소리를 끌며 내려가는 도랑이 있어, 손을 담그면 그 시원함에 젖어 마음마저 착해지는 곳.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에 몰래 들어가, 나를 버리고 그들을 배우고 싶습니다. 내가 그들의 이름과 얼굴을 모르더라도 그들은 그곳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 특별한 누군가를 아는 것보다 막연하게 사람이 그리운 날입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서도 사람을 배우게 하는 사람들. 알뜰하게 자신을 끌어안고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편린들을 널어놓고 넉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마루 아래에 놓인 꼬마의 신발은 나의 유년실절을 떠올리고, 뒤란에서 쉬고 있는 세발 자전거는 어린아이의 통랑한 웃음소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둥에 걸려있는 호미. 호미에 말라있는 흙은 주름진 얼굴의 힘든 노동을 떠올려주며 먼지를 쓰고 묶여있는 하급반 교과서는, 국민학교 교실의 낮은 의자와 흰옷깃의 여선생님을 추억하게 합니다. 아무리 깨끗하게 하려해도 손은 늘 검었었고 얼굴에는 때가 끼여있어서 가까이 가기에도 힘들었던 선생님에 대한 추억, 흙과 함께 놀다가, 바람을 실어 혼자 흔들리고 있는 그네를 보았습니다.
.......
95. 4. 22 진달래 같은 사월에
최재락
* <혁명의 계절에>라는 문구는 96년에 최재락샘이 서점에서 우연히 만나 나에게 사준 책에 사인해준 글귀였다.
# by | 2009/05/19 00:53 | 혁명의 계절에(문학)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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